Monday, May 24, 2010

한 여자의 하루

새벽, 정신몽롱한 상태로 아이 방에 들어가서 머리를 만져본다.
요 몇 일 열이 올라 아침마다 놀래키곤했기에 오늘 새벽엔 별 탈이 없나 확인해 본 것이다.
안경도 안 쓴채, 눈을 가늘게 떠서 시간을 보니 새벽 4시..
아직 이르네.. 다시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한다.

'마미!! 마미!!' 쉰 목으로 고래고래 엄마를 찾는 딸.
시간을 보니 아침 9시 20분.
그래, 일어날 시간이야.. 피곤하고 아직도 감기가 다 가시지 않은 몸이지만, 애써 몸을 일으킨다.
딸이 일어나자마자 화장실로 향하고, 쉬아를 하고 물을 틀어 손을 닦는다.
'I need to eat something.' 아침으로 보통 치리오스에다가 우유를 먹는데,
오늘은 다른 메뉴가 떠오르나보다. 빵에다가 피넛버터.

딸은 배가 고팠는지, 열심히 빵을 먹고, 나는 정신을 깨우기위해 커피를 내린다.
커피에다가 토스트를 먹는 동안에, 딸은 열심히 재잘재잘, 같이 놀아달라고 몸살을 피운다.
오늘은 월요일, 12시 15분 부터 1시까지 체조수업이 있는 날.

'그래, 날씨도 좋고 하니, 바깥 바람좀 쐬고 땀 좀 흘리고 나면 몸이 훨씬 더 가뿐 할 거야.'

그렇게 마음먹고 나니, 몸이 훨씬 가벼워졌다.
샤워를 하고, 짧은 반바지에 꽃무늬 셔츠를 오늘의 컨셉으로 선택하고나니
이젠 밖으로 빨리 나가고 싶어진다.
딸의 옷은 간편한 반바지에 짧은 소매 티,
' 오늘은 날씨가 더우니, 이 정도면 되겠지.' 하고 문을 나서는데,
이건 완전 한 여름 날씨!
엊그제만해도 긴팔에 부츠를 신고 다녔는데, 하루아침에 날씨가 이렇게 달라지다니..

유모차를 끌고 한 블럭을 건너면 바로 버스정류장이다.
오늘은 운 좋게도 얼마 기다리지 않아서 버스가 도착했다.
이렇게 버스를 타고 딸아이의 클래스를 다닌지 벌써 2달하고 반이나 됐다.
집에서 클래스까지는 어림잡아 13 정거장을 지난다.
버스를 갈아 타지 않고 바로 클래스에 도착하기에 이 만큼 완벽한 시나리오도 없다고 생각했다.

클래스엔 딸 또래의 아이들이 10명 정도 있다. 그 중의 스파이더맨의 복장을 입고 다니는 Luke이라는 남자아이는 자칭 우리 딸의 남자친구랜다. 딸 아이도 그 다지 싫지는 않은 모양이다.
저번주엔 Luke이 아팠는지 수업에 오지 않자, 딸 아이는 매우 실망스러워했고, 심지어는 Luke을 보지 못해 슬프다고 했다.
벌써부터 이성에 눈을 뜨는 것인지 신기하기도 하고, 그렇게 많은 남자아이들 중에 특별히 한 아이에 관심을 두는 것에 신기하게 놀랍다.

수업이 1시에 끝나기에 보통 월요일 점심은 늦은 오후에 먹게 된다.
평상시와 다르게 오늘은 점심을 밖에서 먹기로 마음 먹었다.
우리가 자주 가는 타이 레스토랑에 가서 자주 즐겨먹는 음식을 시켜 딸아이와 점심을 든든히 먹고 나서는, 딸 아이에게 물었다.
" 점심을 먹고 나서 뭐 하고 싶어?
Book Cellar 에 가서 컵케익을 먹을까?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을까?"
" 도서관에 갈래요!"

딸 아이가 책을 좋아하는 것은 내가 가장 자랑스러워 하는 부분이다.
되도록이면 딸과 많은 시간을 책과 함께 보내려고 계획해 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할 생각이다. 도서관에 들어가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모녀가 책을 찾고, 책을 읽어주고, 이야기를 듣는다.
딸 아이가 맘에 들어하는 책은 세 번, 네 번 계속 읽어달랜다.
그렇게 졸라대도 책을 읽어주는 것이 싫지가 않다. 도서관은 우리의 안식처가 틀림없다.

그렇게 3시간을 보내고 밖으로 나오자,
5월 말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더운 날씨가 우리를 1분도 안되서 지치게 하였다.
버스를 타고 집에 도착하여 한 숨을 돌릴까 했지만, 그렇게 쉬어버리면 1시간이 금방 지나가 버리기에, 몸을 일으켜 욕조에 물을 받아 딸아이와 같이 멱을 감았다.
목욕 뒤에 몸과 마음이 훨씰 가벼워 지면서, 다시 무엇인가를 할 의욕이 생기기 시작했다.

요 몇일 딸아이와 나의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 식단에 소홀했더니,
신랑이 은근슬쩍 불평을 드러냈다.
' 그래, 오늘 저녁은 조금 특별식으로 준비하자!' 이렇게 마음 먹고 미리 해동시켜놓은 삼겹살과 냉장고에 있는 모든 야채들을 꺼내 지지고, 볶고 요리를 시작하였다.

목욕 뒤에 몸이 많이 피곤했던지, 딸 아이는 늦은 낮잠을 자고 있었기에 요리하기가 훨씬 수월했다. 요리를 열심히 하고 있는 찰라에 문이 열리고, 회사에서 퇴근한 신랑이 들어왔다.
녹초가 되어버린 신랑을 쳐다보니, 매우 안쓰러웠다.
어제 밤에 깊은 잠을자지 못한데다가, 날씨까지 무더워 거의 넉다운 되다 싶이 보였다.
좀비가 다 된 신랑을 쳐다보니, 한창 신나게 요리하던 나의 의욕이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참 신기하다.. 기력이 빠진 신랑을 보면, 내가 더 기운을 내어 신랑의 기력을 북돋아 줘야 할텐데..신랑의 축 쳐진 모습을 볼때마다 나도 덩달아 기운이 빠진다.

딸아이는 우리가 저녁식사를 끝낼때 까지도 일어나지 않았고, 신랑은 밥을 먹는 내내 어깨가 풀이 죽어 밥알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 지 알 수 가 없을 노릇이었다.

물론 상대방에게 기대를 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당신을 생각하고 당신을 기쁘게 해주려고 열심히 준비한 음식이 놓인 자리에서 내가 생각했던 만큼의 대가를 받지 못한 기분이었다.

맛있게 잘 먹었다, 정성껏 차려줘서 고맙다라는 말은 들려왔지만, 내 가슴으로는 그 말이 닿지가 않았다.

저녁을 먹고 신랑은 잠깐 누워야 겠다고 침실로 들어간 후,

왠지 모를 한 숨이 몰려왔다. 아주 깊은 속 마음에서 부터...

식탁 위를 치우고, 설겆이를 하면서 내내 왠지 모를 서운함, 허탈함..
이렇게 나의 하루가 또 마무리 지어지는 것인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나 자신보다는 내 가족을 위해서,
내 가족이 나의 삶의 동기라서 나는 그렇게 살고 있는데,
가끔씩 오늘 저녁같이 이렇게 혼자서 조촐히 설겆이를 하고 있는 이 시간만큼의 나는
참 초라하다.

하지만, 내일은 조금 다르겠지..그래, 내일은 다를꺼야.
최소한 잠자리 들기전에 만큼은 내 자신과 나의 밝은 내일을 생각하며 잠 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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