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February 26, 2011

책상에 앉아서...

자정이 넘었다.
이렇게 책상에 앉아서 글을 읽고, 글을 쓴지도 정말 오랫만이다.
그 옛날, 학창시절엔 진저리나도록 신물이 나는 책상과 의자에서 벗어나고 싶었는데, 세월이 흐르고 인생의 맛을 어느정도 느낀 뒤라 그런지 기분이 정말 새롭다.

글을 쓴다고 남들한테 말하는 것조차 아직은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나에게 있어서 글을 쓴다는 것은 내 자신과의 대화를 하는 기회를 갖는 것이다. 생각이 복잡할때마다 글 한 자씩 써내려가면 엉켜있던 머릿속의 생각들이 가지런하게 정리되는 기분이였다. 그래서 항상 마음이 혼란스러울때마다 가까이에 있는 종이조각에다가 글을 써내려갔고, 그렇게 글을 여기저기 집안 곳곳 - 부엌 한 구석에 장보러 갈 때 쓰는 종이에다가 적혀있는 글,  침대 머리맡에 놓여있는 3년묵은 오래된 노트장, 거실 한 쪽에 놓인 서랍장 바닥에 놓여있던 5년 묵은 일기장 -에  굴러다니던 노트들을 한 곳에 드디어 모아 놓고 보니 감회가 남 다르다.

신랑 자랑과, 자식 자랑은 팔불출이라는 말을 익히 들어서 잘 알고 있지만,  이 와 같은 상황에는 자랑을 할 만도 하다 싶다. 내가 본격적으로 글을 쓰고자 한 지 거의 6개월이 넘었다. 그 동안 작가클래스를 다니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고, 블로그에다가 정기적으로 글을 쓰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우리 신랑이 나에게 넌지시 물어봤다.

 "자기 글쓰는데 불편하지 않게, 제대로 된 책상이랑 책장이 있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생각해?"

사실, 조그만 랩탑 책상에 각도가 잘 맞지 않는 안락의자에 앉아서 글을 써왔던것은 사실이지만, 그 것에 불만을 가졌던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참 다행인지도 모른다. 나에게 주어진 환경에 불만을 가지면 나 자신만 손해라는 지혜를 일찍히 터득했기 때문이다.

 "어..책상이 있으면 좋지만.. 근데, 자기 시간이 되겠어요?"

평소 신랑의 성격과 기질을 잘 파악하고 있는 나로선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나의 시큰둥한 반응과 정반대로 자신의 빡빡한 스케줄을 내팽겨놓고, 나에게 잘 맞을 것 같은 스타일의 책상과 책장을 직접 매장에 가서 보고, 사와서 그 날 저녁 2시간 반이라는 엄청난 시간을 투자하면서까지 나의 책상을 조립해 놓았던 것이다.

 "당신이 수린이와 나를 위해서 고생하고 노력하는 거 알아요. 그리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책상에 앉아서 글을 쓰는 모습도 오랫동안 지켜 봐왔어. 당신은 이 모든 것을 누릴 자격이 돼요. 이 책상을 시작점으로 해서 당신의 작가의 길이 번창하길 빌어."

이 말을 듣고 난 뒤, 난 잠시 말을 잃었다. 방금 전에 들었던 말을 다시 떠올리며 꿈인지 생시인지 재확인한 뒤에 그의 얼굴을 쳐다 올려보았다.
 "고마워요..."
내 눈가엔 벌써 눈물이 고여있었고, 그 감동을 고이고이 간직하고자 다시한번 책상에 눈을 돌렸다.

나에게 있어서 항상, 물질과 물건은 의미가 같이 존재 해야만한다. 그래서 나에겐 굳이 비싼 물건들이 필요없다. 짠순이 기질은 어디를 가도 따라다니는 법인가보다. 난 쓸만하고 보기좋고 거기에다 싸기까지 한 물건이라면 어느누가 트집을 잡는다 해도 즐겁게 구매를 한다. 그리고 어느누가 입바른 말로 나를 구슬리려고 물건자랑을 해도 나에겐 그 반지르르한것들의 겉모습에 별다른 의미가 느껴지지 않는다.

지금 내게 있어서 이 책상과 책장은 그 물질 자체에서 벗어나 엄청난 의미가 존재한다. 첫째, 내 신랑의 무한한 협조와 격려, 둘째, 나에게 앞으로 펼져질 엄청난 가능성, 셋째, 나 자신이 또 다른 내 자신을 찾아가는 모험의 여정. 난 이 모든 것을 즐기고 감사해 한다. 오늘 밤도 즐겁게 웃으면서 잠자리에 들어 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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